공황장애로 힘들던 시절,
고속버스를 탔던날의 기록
집에서 조금 멀리 갈 일이 있어서 고속버스를 타게 되었다. 처음 공황발작을 겪었던 곳이 고속버스라서, 아직까지도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하철 여러번 갈아탈 바에는 요즘 많이 괜찮아 졌기에 노출연습도 할 겸 마음을 굳게 먹고 버스를 타러갔다.
날씨가 갑작스럽게 추워졌는데 어느정도 추울지 제대로 감을 못잡고 옷을 얇게 입고 나갔었다. 밖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추위에 덜덜 떨어야 했다. 비록 30분 가량의 짧은 거리지만 그 동안 어지간해선 내릴 수 없으며, 창문이 열리지 않는 버스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 등등 타기 전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지금이라도 지하철을 타고 갈까 생각했었다. 고민하는 사이에 버스가 도착했고 너무 추워서 더이상 밖에서 돌아다니고 싶지 않아 과감히 버스를 탔다.
시간은 오전이었고 버스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른쪽 맨 앞자리에 앉으니 앞과 옆이 탁 트여 있었다. 버스 안은 따뜻했고 햇빛도 내리쬐고 있었다. 창밖을 구경하며 생각을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불안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불안한가? 생각해보면 결론은 이동 중 공황 발작이 올까 걱정되는 것이었다. 고속버스라는 공간이 주는 답답한 특성 때문에 발작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이미 발작이 온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두려운건 두려운 것 같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나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버스 안이 따뜻하고, 그닥 답답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창밖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목적지 근방에 왔다. 나름 괜찮은 것 같다고 느꼈다.
3시간 가량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 처음 알게된 두분과 함께 이동하게 되었는데, 일마치고 화장실을 못 다녀왔다는 것에대한 불안함. 말 몇마디 섞은 사람들과 함께 이동할때 발작하게 된다면 그 모습을 보이게 될까봐 불안해졌다. 혼자 이동하는 것 이었더라면 조금 더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는사람과 함께 있으면, 위급상황에 도와줄 수 있다는 안정감보다 망가지는 모습을 보일까봐 오히려 불안함이 큰 것 같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내 생각의 변화가 필요했다. 스스로의 흉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대해 강박적으로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불안이 커졌다고 어느정도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것들 때문에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날씨몫이 컸다. 만약 지하철을 타려면 앞으로 20분가량 밖에서 이동해야 할텐데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가 도착했고 망설이다 겨우 버스에 올랐다. 버스안은 답답했다. 사람이 꽤 많이 타고 있었고 빛이 강해 대부분 커튼을 치고 있었다. 맨 앞자리 역시 이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짐이 많아 빈 자리에 앉으니 답답함이 배가 되었다. 버스는 이미 출발했고 몇정거장 후면 멈추지 않고 30분을 달린다. 더이상 중간에 내릴 수 없게 되었을때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을 살폈다. 다행히 창문이 많이보이는 복도쪽 자리 하나가 있었고 그곳에 가서 앉았다. 짐을 내려놓고 바로 앉았다. 심하게 불안하거나 심장이 빨리뛰거나 숨차지 않았다.
다만 조금 걱정이 되었고, 약간의 불편감이 있었다. 한편으론 발작이 처음 왔을때도 힘들면 맨 앞자리로 가서 어느정도 버틸 수 있었기에 그런 방법이 있음을 떠올렸다. 못버티더라도 실신하고 일어나면 되는 것이었고, 정 안되겠으면 사람이 죽겠다는데 중간에 어떤식으로든 내릴 수 있을것이었다. 속이 좀 안좋았지만 긴장해서 그런 것이었고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피곤해서 불편한 상태로 졸다 깨다 하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는길엔 조금 차가 막혔다. 차가 막혀도, 속도가 느리니 힘들때 어떻게든 내리기 쉽지 않을까? 그래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겠지,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어떤식으로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게 좋은 것같다. 처음 공황발작을 겪고나서는 뭐든 다 불안하고 힘들어 긍정의 ㄱ자도 떠오르지 않았었는데.. 마치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 사람 처럼 말이다. 누군가에게 '어떻게든 잘 될거라는 생각을 가져봐'라는 이야기를 듣자 그때서야 '맞다, 그런 생각도 할 수 있었지' 했다. 상황을 좋은쪽으로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힘들때 그 무엇도 하면 안된다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식으로는 대처방법이 있다고 말이다. 도와줄 사람이 있든 없든 어쨌든 잘 극복할 수 있을거라고.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면 그럼 죽는것도 나쁘지 않지 않느냐 되묻는다. 그냥 다 괜찮은 것이다.
무슨일을 하든 괜찮고, 어떤 모습을 보여주든 괜찮다. 무슨말을 해도 괜찮고, 어떤 상태여도 괜찮다.
그냥 다 괜찮다.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고, 발작이 와도 안와도 좋다.
오면 견뎌내는 연습을 할것이고 안오면 안오는 것 자체로 좋다. 다 좋다. 안되는건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아 질 것이니 걱정하지 말자. 걱정 하든 하지 않든 그런 상황이 오려면 오는것이니 괜히 시간낭비하지 말자. 딱 맞닥뜨렸을 때, 그 때 잘 버텨나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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